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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LOOk, Truth&Tidings, Precious Seed, Counsel에서 번역과 전제의 허락을 받아 게재합니다.

 

성경에 따라 이루어진 하나님의 역사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9세기 초엽 영국의 기성 교회는 침체해 있었고 많은 성도들은 국교를 떠나 따로 모이고 있었습니다. 교회사는 끊임없는 개혁의 역사인데, 루터, 칼빈, 웨슬레를 통한 부흥이나 이와 유사한 개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면서 또 다시 냉랭한 형식주의로 전락해 갔습니다. 그러던 중 나폴레옹이 일으켰던 전쟁으로 성도들은 성경의 예언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주님의 오심이 가깝다는 진리가 새롭게 주목을 끌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고학적 발견은 고등비평을 궁지로 몰아넣었고 성경의 권위를 회복시켜 갔습니다. 이에 따라 3대 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선교열의 고조, 성경의 대대적 보급, 그리고 이제 말씀드리려는 'Brethren Movement'의 시작을 들 수 있습니다.
1825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성경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상고하면 상고할수록 당시의 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 형식과 전통에 얽매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827년, 마침내 7명의 신앙동지들이 국교를 떠나 따로 모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은 아일랜드를 비롯해 영국은 물론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스페인 등 유럽 대부분의 지역과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중국, 인도, 아라비아 등 세계 전역에서 거의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후세에 교회의 역사는 이를 가리켜 형제 운동(Brethren Movement)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성경학자로 근세의 터툴리안(Tertulianus)이라 불리는 다비(J.N. Darby), 고아원의 설립자로 일생을 통해서 무수한 기도의 응답을 받았던 조지 뮐러(George Muller), 모세오경을 주해한 매킨토쉬(C.H. Mackintosh), 수많은 주해를 썼고 다비의 저작 전집을 발행한 켈리(William Kelly), 다니엘서를 주해하여 예언의 기초를 확립시켰던 앤더슨 경(Sir Robert Anderson), 원어에 뛰어난 학자인 트레겔레스(S.P. Tregelles), 예언적 입장에서 교회사를 쓴 밀러(Andrew Miller), 주해 성경의 저자인 뉴베리(Thomas Newberry), 탁월한 성경교사요 저술가였던 에릭 사우어(Eric Sauer), 하나님의 사랑을 정열적으로 전했던 무어하우스(Henry Moorhouse),완벽한 신구약 성구사전을 출판한 위그람(Gerge Vice Simus Wigram), 인도에서 주님만 의지하고 선교했던 그로우브스(Anthoy Noris Groves), 리빙스턴을 이어 아프리카에서 초교파적 선교에 헌신했던 아르놋(Frederick Stanley Arnot), 수많은 찬송가의 저자인 데크(J.G. Deck), "구원의 확신과 안전 그리고 기쁨"의 저자로 잘 알려진 커팅(George Cutting), 그밖에도 차프만(R.C. Chapman), 스탠리(Charles Stanley), Numerical Bible의 저자인 그랜트(F.W. Grant) 등 천여명의 교계 석학과 지도자들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신앙양심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이게 됨으로써 당시의 기독교계에 커다란 감동과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리피스(Thomas Griffith)는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 진리를 가장 바르게 해석한 사람들이었다"고 말했으며, 학자요 저술가였던 아이언사이드(H.A. Ironside)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 '형제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말했으며, 무디(D.L. Moody)는 "전세계의 책이 다 타버릴지라도 나에게 한 권의 성경과 매킨토쉬의 모세 오경 주해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스펄젼(C.H. Spurgeon)은 켈리에 대해 "그의 생각은 우주처럼 크다"고 말했으며, 판톤(D.M. Panton)은 "형제 운동의 영향력은 종교 개혁보다 훨씬 컸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은 에스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에 전력했습니다(스 7:10). 세상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Brethren', 'Christian Brethren', 'Plymouth Brethren' 등으로 불렀으나 그들 스스로는 파명을 사용한 적이 없었고 어떤 계급적 호칭도 배격했습니다. 거룩해졌으니 성도로 믿음을 가졌으니 신자로, 사랑을 인하여 형제로, 순종을 인하여 제자로, 경배를 인하여 제사장으로, 증거를 인하여 증인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했으니 그리스도인으로 자처했을 뿐입니다.

 

<Plymouth Brethren에 대한 평가>

 

아더 피어선, 조지 뮬러 전기 작가

(다비, 조지 뮬러, 채프만을 가리켜) “우리 시대에 거인들이 살았다.”

 

빌리 그레이엄,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진짜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언제나 플리머스 형제교회 소들의 우유를 얻어 마셨다.”

 

D. M. 판톤,

“형제 운동의 영향력은 종교 개혁보다 훨씬 컸다”

 

그리피스 토마스(W. H. Griffith Thomas),

“이들이야말로 교회 역사상 하나님의 자녀 중에서 진리를 가장 바르게 해석한 사람들이었다.”

 

마크 프리스, "What I have Found"의 저자

“1800년대 초, 성령님은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을 인도하심으로써 주님의 이름으로만 모이는 형제들과 같은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다. 그들의 시작은 비록 소수의 경멸을 받는 작은 무리로 시작했지만, 형제교회는 복음주의 기독교계에 잊혀질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오늘날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흔히 회자되는 주제들, 즉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이라는 복된 소망, 율법과 은혜 사이의 명백한 구분, 하나님의 목적 가운데 교회의 독특한 지위, 이스라엘의 미래 축복, 등과 같은 진리들은 J.N. 다비, 윌리암 켈리, F.W. 그랜트, H.A. 아이언사이드, C.H. 매킨토시, 사우엘 리도우트, W.E. 바인 등과 같은 브레드린 저자들과 성경 교사들에 의해서 그 시대에 상당히 모호하게 회자되고 있던 진리들을 회복시킨 공헌에 힘입고 있다. 이러한 경건하고 은사 있는 사람들이 수년 동안 복음주의 기독교계에 미친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나는 이 형제들을 높이려는 뜻이 아니라, 이들을 무슨 극단적인 종파 또는 심지어 이단으로 취급하려는 어떤 사람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반대로 형제교회는 지난 2세기 동안 성경을 믿는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으며,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 육체의 부활과 문자적인 재림, 오직 믿음을 통한 구원, 성경의 축자 영감 등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들을 수호하는 일을 해왔다.”

 

A.C. 개벨레인, "Fundamentals"의 편집자

“나는 다비, 윌리암 켈리, C. H. 매킨토시, F. W. 그랜트, 벨렛 등 형제들의 글 속에서, 내 영혼이 필요로 하는 영적 양식을 섭취했다. 나는 이 형제들의 건전하고 신령한 가르침을 통해서 볼 때, 이들이야말로 사도들 다음 가는 영적 거장들이라고 생각한다.”

 

워치만 니, 중국의 위대한 성경교사

“나는 수입의 1/3은 개인적 필요에, 1/3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나머지 1/3은 형제들의 책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나폴레온 노엘, "형제교회 역사"의 저자

“지난 세기 가장 위대한 근본주의 지도자들은 다비와 형제들의 가르침과 사역에 큰 빚을 지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찰스 스펄전, 영국 침례교 목사

“윌리암 켈리는 우주를 위해 태어났다. 그의 생각은 우주만큼 크다.”

 

에드윈 크로스, "Irish Saint and Scholar ,William Kelly"의 저자

“켈리의 책은 모든 곳으로 갔다. 북미 지역 전체와 심지어는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갔다. 모든 대륙에서 그의 책을 필요로 했다.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및 신세계에서 주문이 쇄도했다. 영어로 된 최상의 책들을 읽고 싶어 하는 일본 국민들이 켈리의 책들을 주문했다.”

 

사이러스 잉거솔 스코필드, 스코필드 관주 성경의 편집자, 무디의 설교로 회심을 경험

“매킨토시의 저서는 나에게 성경의 예언을 이해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D.L. 무디, 100만명에게 복음을 전한 세계적인 복음 전도자

“전 세계의 책이 다 타버릴지라도 나에게 한 권의 성경과 매킨토시의 모세 오경 주해만 있으면 충분하다.”

“나는 C.H. 매킨토시의 저서들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그의 저서들은 나에게 성경 진리를 열어주었으며, 그의 저서를 읽는 시간은 나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내가 가진 모든 책의 장서를 잃어버린 다해도, 결코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매킨토시의 저서들이다. 성경과 그의 책들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의 저서들은 내게 성경을 이해하는 핵심적인 열쇠가 되어 주었다.”

“매킨토시의 책은 나의 영적인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매킨토시는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다.”

* 무디가 1867년 영국으로 오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할 수 있는 한 플리머스 브레드린에서 성경, 특히 성경의 예언을 배우기 위한 것이었다. 무디는 미국에서 전천년주의를 최초로 받아들인 유명한 전도자였다.

 

데이빗 윌커슨, "십자가와 양날 검"의 저자

“십자가에 대한 매킨토시의 견해는 나로 하여금 셀 수 없이 기뻐 외치며 흥분시켰다.”

 

사무엘 리도우트(1855-1930)

“매킨토시의 모세오경 강해는 모든 성경학도들의 장서에 꼭 있어야 할 책이다. 그의 책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체 성경을 열어주는 열쇠 역할을 해왔다. 사랑하는 저자, 매킨토시는 경건하면서도 진리를 표현하는데 탁월한 은사를 가진 유능한 사람이었다. 영어권 세계에서 그보다 더 아름답고도 강력하게 영어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해리 아이언사이드(1876-1951)  ,  무디기념교회 목회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은 알든 모르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형제들’의 도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다.”

“다비의 성경주석 시리즈는 모든 성경학도가 평생에 곁에 두고 연구할 불후의 명작이다.”

“성경강해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조금도 주저 없이 다른 누구 보다 소위 플리머스 형제교회의 5명의 저자들에게 큰 빚을 졌다고 말하고 싶다. 매킨토시의 모세오경 강해와 함께 매킨토시 선집(Miscellaneous Writings)은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내가 젊은 설교자였을 때, 나의 믿음을 위한 굳건한 토대를 놓고 또 성경 진리를 바르게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지 찾고 있었을 때, 매킨토시의 두 가지 책은 두 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시켜주었다.”

* 매킨토시의 저서는 스웨덴 루터교회와 새롭게 발흥된 오순절 그룹들에게 세대적인 가르침을 소개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유진 슐러 잉글리쉬, 아이언사이드 전기 작가

“그리스도의 교회는 형제교회에 큰 빚을 지고 있다. 형제교회 초기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 J.G. 벨렛, J.N. 다비, 윌리암 켈리, C.H. 매킨토시 등은 참으로 헌신되고 은사를 받은 종들이었고, 변할 수 없는 성경 속에 있는 진리를 새로운 방식으로 여는데 성령님께 쓰임 받은 도구였다. 이들의 설교와 문서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머리되심, 그리스도 몸의 하나됨, 성령의 하나되게 하심, 그리고 임박한 주의 재림과 같이 중요한 진리들이 교회에 되돌려졌다.”

 

워렌 위어스비, 미국 침례교 목사

“내가 매킨토시에게서 받은 신령한 복과 교훈의 부요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