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bullet_pieces.gif 빛을 남긴 여인- 에스더

 

 

   빛을 남긴 여인 - 에스더

"죽으면 죽으리이다"

사는 하나님이 그 대적 사단의 권세로부터 자기 백성을 끌어내사 하나님 자신이 궁극적인 승리자임을 온 우주에 선포하시는 구속의 파노라마라 할 수 있습니다. 이 거룩한 전쟁을 이끌어 가시는 중에 하나님은 미천한 자들을 들어 사용하사 그 자칭 강한 자인 사단을 부끄럽게 만들기를 기뻐하십니다(사 14:12-17). "주의 대적을 인하여 어린아이와 젖먹이의 입으로 말미암아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와 보수자로 잠잠케 하려 하심이니라"(시 8:2). 그러한 하나님의 극적인 구원역사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목이 바로 우리가 상고하고자 하는 에스더서입니다.


왕후 와스디가 폐위된 일(1:9-22), 와스디 대신 히브리 여인 에스더가 간택된 일(2:1-18), 에스더의 사촌 오라비인 모르드개가 왕을 모살하려는 음모를 엿듣고 새 왕후 에스더에게 고한 일(2:18-23), 왕이 이스라엘 대대의 대적인 아각 사람 하만의 지위를 크게 높인 일(3:1), 모르드개의 신앙의 지조로 이스라엘이 멸절당하게 된 일(3:2-15), 모르드개의 간청으로 에스더가 규례를 어기고 왕 앞에 나간 일(4:1-5:4), 에스더의 두 번째 잔치 전 날 왕이 잠을 이루지 못하여 역대 기록을 가져와 읽게 한 일(6;1-2), 모르드개와 하만의 운명이 바뀐 일(6:3-7:10), 그리고 이스라엘과 그 대적의 운명이 바뀐 일(9:1-19) 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숨막히게 돌아가는 사태의 추이 배후에는 하나님의 백성의안전과 운명을 둘러싼 하나님과 사단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초점은 자연, 이러한 싸움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은 에스더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는가에 모아지게 됩니다. 에스더는 과연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은 어떠한 자를 사용하기를 기뻐하실까요?

1. 에스더의 출현 배경
에스더의 출현은 한 여인의 종막을 배경으로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교체는 곧 한 나라의 어미(國母)의 교체를 의미했고, 나아가서 그 나라의 아내상과 여인상을 바로 잡는 것을 의미했습니다(1:16-22). 그 자리를 박탈당한 와스디에 대한 고소장에는 '거역과 불순종'이란 죄목이 뚜렷이 새겨졌습니다. "그러나 왕후 와스디가 내시의 전하는 왕명을 좇자 오기를 싫어하니 왕이 진노하여 중심이 불붙는듯하더라"(1:12). 와스디가 어쩌다가 왕명을 거역하는데까지 나아갔을까요? 그것은 그 자신의 뛰어난 외모와 왕후로서의 높은 신분의식에 도취되어 내면에 갖추어야 할 여성미를 철저하게 상실한데 그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외적인 조건에 스스로 매료되는 중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왕으로부터의 독립'을 마음으로 꾀하게 되었고, 그러한 내면에 쌓인 생각이 '왕명 거역'이라는 당혹스런 행동으로 표출된 것입니다. 와스디는 자기욕망에 사로잡혀 '독립'이라는 정체 모를 포부를 키웠건만 그 결과는 '자기만족과 성취'가 아니라 '버림받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안전한 길을 벗어나 스스로의 길을 고집하며 헛되이 자기세계를 추구하는 이들이 당할 결국을 보여주는 생생한 그림이 아닐까요!


와스디의 불순종을 개인의 차원을 넘어선 국가경영차원의 중차대한 문제로 인식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처를 제안한 왕의 시신 므무간은 실로 문제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 왕후 와스디가 왕에게만 잘못할 뿐 아니라 아하수에로왕의 각 도 방백과 뭇 백성에게도 잘못하였나이다 ... 왕후의 행위의 소문이 모든 부녀에게 전파되면 저희도 그 남편을 멸시할 것인즉 ... 멸시와 분노가 많이 일어나리이다 ... 와스디로 다시는 왕 앞에 오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내리되 ...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 ... 귀천을 무론하고 모든 부녀가 그 남편을 존경하리이다 ... 남편으로 그 집을 주관하게 하고 ..."(1:16-22). '그 왕후의 위를 저보다 나은 사람에게 주소서!'(19절) 저보다 나은 사람! 거역과 불순종과 자기 도취와 무분별한 독립성향을 지닌 사람이 아닌 온유과 순종과 자기 부족 및 상호신뢰 의식을 지닌 사람에게 그 위를 주소서! 하나님께서도 역시 '더 나은 사람'을 찾고 계시지 않을까요? "그 후에 저희가 왕을 구하거늘 하나님이 베냐민 지파 사람 기스의 아들 사울을 사십년간 주셨다가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행 13:21, 22). 우리 중 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란 평가를 얻어 하나님의 구속사에 길이 그 이름을 남길 수 있을는지요!

2. 가정의 일원으로서의 에스더

"모르드개도 함께 사로잡혔더라 저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는 없고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2:6, 7). 에스더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사촌오라비 수하에서 성장기를 보낸 불우한 가정환경을 지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환경의 영향을 받게 마련이며, 특히 가정은 그 어떤 요서보다 우리의 성격형성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에스더가 일찍이 부모를 잃었다는 것은 그녀의 균형잡힌 성장을 위해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부모만이 줄 수 있는 훈훈한 정과 자상한 돌봄, 사랑의 꾸지람과 채찍으로부터 격리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상쇄될 수 없는 정서적인 상실감을 심비에 깊이 새기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뿌리깊은 정서적인 불만감을 해소해볼양으로 그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한 부자연스런 반응들을 보이며, 그 마음에 반항적이고, 냉소적이고, 공격적이고, 매사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성향들을 키우기 쉬운 것입니다.


에스더가 처한 환경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여느 훌륭한 가정교육을 받은 자녀 못지 않게 유순하고 순종적인 자녀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에스더가 자기의 민족과 종족을 고하지 아니하니 이는 모르드개가 명하여 고하지 말라 하였음이라 저가 모르드개의 명을 양육받을 때와 같이 좇음이더라"(2:10, 20). 무엇이 에스더로 하여금 환경의 영향을 뛰어넘는 양육을 받아 그 마음에 일찍부터 순종심을 키우게 하였을까요? 다름아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촌 오라비의 손에 들린 성경이 그러한 교육을 가능케 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육신의 부모로부터 받지 못한 양육의 기회를 그녀의 영혼의 아버지되신 하나님의 마음이 담뿍 담신 성경으로부터 풍성히 공급받았던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거룩과 공의가 그녀의 영혼을 교훈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해주었던 것입니다(딤후 3:15-17). 그리하여 그녀는 이제 한 균형잡힌 성년이 되어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나의 어릴때부터 의지시라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사를 전하였나이다"(시 71:5, 17).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시 119:103).


에스더가 이같이 환경상의 장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인격적 요소를 잘 갖춘데서 우리는 참교육의 근원이 무엇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무엇이 참 교육일까요? 어떻게 하는 것이 참 교육방법일까요?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움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되어 그 언행심사가 하나님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것, 이 외에 다른 길이 있을까요?

3. 한 여성으로서의 에스더

가정의 일원으로서 에스더는 '순종하는 자녀'의 모습을 잘 갖춤으로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시선을 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여성 고유의 미(美)를 추구하는 한 여성으로서 에스더는 어떤 본을 끼쳤을까요? 우리는 그녀가 자기 차례가 되어 왕 앞에 나아갈 때의 모습을 통해 그 아름다운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처녀가 왕에게 나아갈 때에는 그 구하는 것을 다 주어 후궁에서 왕궁으로 가지고 가게 하고 에스더가 차례대로 왕에게 나아갈 때에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의 정한 것 외에는 다른 것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보는 자에게 굄을 얻더라"(2:13, 15).
여성은 그 신체구조부터가 남성과는 다른 예술적인 미(美)를 발산하고 있으며 자신의 여성됨을 인식하는 시기가 되면 본능적으로 그러한 여성미를 가꾸는데 정성을 들이게 됩니다. 그러기에 여성에게 있어서 외모는 남성의 경우에 비해 훨씬 '의미가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또 그렇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에스더가 왕궁에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은 그러한 여성미가 가져다 줄 수 있는 기회를 만난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정해진 최소한의 것으로 자신을 단장하는데 만족했습니다. 정결과 정숙미, 우아함과 다소곳함을 은은히 풍기는 외에 필요이상으로 자신을 화려하게 꾸미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남다른 외모에 스스로 도취되어 그것으로 뭇남성들의 마음을 사고 그것으로 부귀영화를 손아귀에 넣을 수 있다는 허영심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는 자신의 아리따운 용모보다 내면의 정숙미가 훨씬 더 소중했습니다. 그녀는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는 것"(요일 2:17)과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는 것"(사 40:6, 7), 그리고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는 것"(시 103:15)을 알고 있었기에 그저 자신의 앞 일을 하나님의 뜻에 맡긴채 담담한 심경으로 왕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 어떤 욕망에도 굴하지 않은 실로 자유로운 심령으로 세상 권세자를 의연하게 대면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성의 참 아름다움과 기품을 한껏 발산하는 승리자의 모습으로!

4. 왕후로서의 에스더

"왕이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욱 사랑하므로 저가 모든 처녀보다 왕의 앞에 더욱 은총을 얻은지라 왕이 그 머리에 면류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를 삼은 후에 왕이 크게 잔치를 베푸니 이는 에스더를 위한 잔치라"(2:17, 18).
아하수에로는 외모만 갖춘 와스디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내면의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에스더로 인해 그 마음이 흡족했습니다. 에스더는 아하수에로왕의 여성을 보는 관점을 한 차원 높여주었을 것이며, 이는 자연 그 나라 남성들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가져다 주었을 것입니다. 와스디와는 달리 에스더는 왕을 대하는데 있어 각별한 주의와 마음으로부터 공경심을 표했는데, 하만의 일로 자기 민족의 운명을 왕께 고하기 위해 그 앞으로 나아가 입술을 여는 그녀의 모습이 그러한 태도를 잘 보여줍니다.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고 왕이 내 소청을 허락하시며 내 요구를 시행하시기를 선히 여기시거든...왕이여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며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왕이 만일 즐겨하시며 내가 왕의 목전에 은혜를 입었고 또 왕이 이 일을 선히 여기시며 나를 기쁘게 보실진대..."(5:4, 8; 7:3; 8:5).
전적으로 왕의 처분에 자신을 맡기며 지극한 공경심으로 조심스레 자신의 소청을 밝히는 에스더의 태도에서 우리는 모든 권세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임을 아는 한 여성이 위에 있는 권세 앞에 취하는 합당한 태도의 본을 보게 됩니다(롬 13:1). 그녀는 아하수에로왕을 변덕스럽고 독선적인 기질의 불완전한 인간 통치자이자 까다롭고 접근하기 어려운 성향의 남편으로 보기 전에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사자로 대하며(롬 13:2-7),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갖춘 것입니다(벧전 3:1, 2). 그녀는 남편을 공경하고 왕을 공경하는 것을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같은 수준에 놓고 적용했습니다(벧전 2:17).

5.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으로서의 에스더

에스더의 가정의 일원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그리고 왕후로서 끼친 본은 한결같이 그녀의 하나님을 향한 남다른 경외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이제 이러한 하나님을 향한 그녀의 사랑은 그녀의 민족이 일대위기를 만난 때를 같이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사람으로 표출될 참이었습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는 모르드개의 책망어린 간청에 에스더는 죽음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4:14-15). 그녀는 왕궁에서 온갖 특권을 누리면서도 자신이 포로된 히브리인이며 결국 동족과 운명을 같이 해야 한다는 의식을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히 13:3; 벧전 5:9). 그녀는 느헤미야처럼 몸은 화려한 수산궁에 있으나 마음은 하나님의 백성의 누추한 장막 안에 있었습니다(느 1:1-11; 시 84:10; 히 11:24-26). 그녀는 자신의 안락한 환경이 하나님의 백성의 안녕과 복지에 기여하지 않는 한 오히려 자신에게 재앙이 될 것을 깊이 우려하고 있었습니다(신 8:12-14, 17).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그녀의 선언에는 그같은 깊은 동족애와 명명백백한 생사관이 함축되어 있었습니다. 그녀가 왕 앞에 나아가 어떠한 말로 자신의 소청을 아뢰었는지요! "...내 요구대로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나와 내 민족이 팔려서..."(7:3, 4) "내가 어찌 내 민족의 화 당함을 참아 보며 내 친척의 멸망함을 참아 보리이까"(8:6).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이 깊은 사랑의 호소에 어찌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겠습니까! 이 수산궁과 같이 모든 것이 풍족하여 아무 부족을 모른는 세상의 안락에 젖어 멀리서, 혹은 가까이 곁에서 가난과 질병과 외로움과 핍박으로인해 신음하는, 그리고 주와 복음을 위해 결연히 고난의 길을 택하고 나아간 우리의 믿음 안의 형제자매들의 처지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그 무정함과 무감각함과 사랑없음을 무슨 말로 변명할 수 있겠습니까?(요일 3:10, 14, 16-19; 잠 17:17) 무슨 낯으로 우리를 위해 그 귀한 목숨을 버리신 그분을 대할 수 있겠습니까? "나의 형제는 내게 성실치 아니함이 시냇물의 마름 같고 개울의 잦음 같구나"(욥 6:15). 원컨대 이 냉랭하고 강퍅하고 무디고 무딘 심령에 에스더의 뜨거운 형제애를 불어넣어 주사 우리 형제의 사정을 진실히 생각하고 진실히 돌아보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빌 2:19-22)


에스더는 나약한 한 여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멸절의 위기에서 구해내는데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불우한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일찍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익힌 그 자녀로서의 철저한 순종심, 자신의 외모보다는 내면의 미를 다듬는데 마음을 들임으로써 허영심에 종노릇하는 낮은 차원의 여성상이 아닌 실로 고결하고 드높은 차원의 여성상을 제시해 보인 그 여성으로서의 지고한 순수미, 왕이요 남편인 아하수에로를 불완전한 인간이 아닌 하나님의 권위를 대행하는 하나님의 사자로 알고 대한 그 극진한 공경심, 그리고 자신의 뿌리가 고통받은 히브리인임을 한시도 잊지 않고 이제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결단을 내리고 나아간 그 깊은 동족애와 희생심으로 인해 그녀는 '그녀가 속한 바 곧 그녀의 섬기는 하나님'의 마음을 심히 기쁘시게 했고(행 27:23), 이에 룻과 함께 그녀의 이름으로 명명되는 성경을 후세에 남기는 영예를 얻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짧은 이생을 마감하고 사랑하는 주님 품에 들어갔을 때 다시 한 번 '그녀를 위한 잔치'가 배설되었을 것입니다(2:18). 우리도 그녀가 남긴 본을 따라 이 나그네길을 끝까지 달려감으로 그 '에스더를 위한 잔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글쓴이 : 정병은

Ho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