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bullet_pieces.gif 빛을 남긴 여인 - 한나

 


             image/bullet03_blue.gifimage/bullet02_pink.gif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 - 한나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내리라"(렘 15:1).

"그 제사장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요 그 이름을 부르는 자 중에는 사무엘이라 저희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시 99:6).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위기의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존중히 여기는 종을 일으켜(삼상 2:30)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하신 섭리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시 106:23). 그리고 그러한 종들의 출현은 종종 그들의 가정적인 배경에 대한 소개와 함께 시작되며, 또 그러한 배경 소개는 종종 한 여인에게로 초점이 모아지는 것을 눈여겨 볼 수 있습니다(출 2:1∼ ; 삼상 1∼ ).

이것은 두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는데, 하나는 한 민족의 신앙의 보존과 계승에 있어서 가정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점이며(시 78:5-8), 또 하나는 그러한 소중한 영적 유산의 산실(産室)인 가정에 있어서 여성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가 하는 점입니다(잠 14:1).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성 없이는 경건한 가정이  세워질 수 없고, 따라서 국가나  민족의 신앙도 보존될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함께 상고해 보고자하는 한나라는 여인은 그런 점에서 우리의 시선과 관심을 끄는 여성으로 손꼽힐만한 인물입니다. 그러면 이 여인의 어떤 면들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그녀로 하여금 이스라엘 민족을 오랫동안의 영적 침체기로부터 영적 대각성의 시대로 끌어올린 위대한 영적 지도자 사무엘의 모친이 되는 영예와 존귀를 입게 했는지 사무엘상 1,2장의 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어둠 속에서 빛을 발한 한 가정의 경건

우리가 잘 아는대로 이 시기는 사사시대 말기로서 거듭된 백성들의 타락과 우상숭배로 인하여 하나님의 묵시가 흐려질대로 흐려져 사람들마다 영적인  푯대를 잃은 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향하던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였습니다(삼상 3:1; 잠 29:18; 삿 21:25). 그러나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많으신 긍휼을 따라(사 42:3), 또한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이 땅에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늘 남겨두시고 그 소수를 통해 그 거룩한 역사를 면면히  이어 오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택하심을 따라(사 6:13; 시 4:3; 롬 11:4-5) 이 때도 보존함을 입은 소수의 잔존자가 있었으니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엘가나의 가정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엘가나와 그의 가정이 매년제를 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전이 있는 실로에 올라간 일을 여러 차례 기록해 보이시는데(1:3,21, 2:19), 이는 그와 그의 가정이 그들의 주변에 만연된 불경건한 삶을 멀리한 채 늘 그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이 계신 성소에 있어 그분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기를 쉬지 아니한(시 27:4) 모습을 아름답게 부각시키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그 경건한 가정의 실로에 '올라간' 모습과 당시의 부패하고  퇴락한 영적 상태를 대변해 주는 제사장 엘리와 그 가정의 실로에서 '자라만 지키고 있는' 모습을 바로 곁에 대비시킴으로(1:3,9) 엘가나의 가정의 경건이 '어두움이 깊을수록 별빛이 더 빛나듯이' 그 암흑한 상황 가운데 상대적으로 더욱 빛을 발했음을 엿보게 해줍니다. 아울러 사무엘상 1장에는 '실로'(3,9,24절), '제사장'(3,9절), '제사'(3,4절), '제물'(4절), '여호와의 집'(7,9,24절), '경배'(3,19,28절), '기도'(10,11,17,27절), '서원'(10절), '매년제와 그 서원제'(21절) 등 여호와의 전과 거기서 여호와를 뵙는 일과 직접 관련이 있는 표현들이 가득한 것을 볼 수 있는데(2,3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개인으로부터 시작해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규모와 형태의 경건과 그 능력은 바로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에서 결정된다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하게 해줍니다. 즉, 엘가나의 가정의 경건과 그 능력은 신령과 진정으로 이 '실로'를 찾아가는데서 시작되었으며, 반면에 이스라엘의 불경건과 그로 인한 무기력은 이 '실로'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경홀히 여긴데서 시작되었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엘가나와 그의 가정은 그들의 민족이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무기력의 늪에 빠진 것과 그로 인해 자신들의 심령까지 무사태평을 제안하며 은근히 꾀는 타협의 속삭임에 우려할 정도로 노출되어 있는 것을 깊이  인식했으며, 거기서 빠져나와 그들 자신과 그들이 속한 민족의 현재와 장래에 회복과 소망의 빛을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전에 올라가는 것뿐임을 절감하고 그렇게 행했던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가정의 모습은 어떠한지요? 하나님 앞에 나아가 그분의 아름다움을 뵈옵고 경배드리고 위로부터 오는 감화와 능력을  힘입어 우리의 속사람이 날로 강건해져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고 있는지요?(엡 3:16; 골 1:9-10) 아니면 "의인의 집을 엿보며 그 쉬는 처소를 헐기"위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사단의 궤계에 넘어가(잠 24:15; 벧전 5:8)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무런 시간도, 마음도 드리지 못한채, 아무런 영적인 자극도, 의욕도, 활력도, 비전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육신을 위해 살아가기에 바쁘지는 않는지요?

모쪼록, 주님께서 우리 각인의 마음을 일깨우고 크게 감동해 주셔서 우리의 무기력하고 냉담한 모습과 그 예견되는 장래를 바로 보게 하시고 그로 인해 엘가나의 가정이 남긴 믿음의 여명(黎明)을 따라 여호와께서 계시는 저 '실로'를 향해  분연히 나아가게 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추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 80:3,7,19).

    2. 잠잠하고 참아 기다릴 줄 아는 여인(시 37:7,8)

이제 앞서 암시한 대로 한 가정에서 우리의 시선을 한 여인에게로 모아 보겠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성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대로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에 있다 하겠습니다(벧전 3:4). 그러한 심령은 남편에게서는 사랑의 표로 신뢰를 받게 하고(잠 31:11,28), 자녀들에게서는 존경의 표로 감사를 받게 합니다(잠 31:28). 실로 그러한 심령을 소유한 여성이야말로 모든 슬기로운 남성들이 그 아내로 얻기 위해 간절히 사모함으로 찾도록 찾을만한  값진 진주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잠 31:10).

그러면, 그러한 심령은 어디에서부터 오며, 또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지 한나의 경우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한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여인으로서 범사에 그분을 인정하는 삶으로 자신을 잘 단장해 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잠 3:6). 그녀는 자식이 없는 불행 속에서도 그것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다만 그녀의 삶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원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한 남편을 사이에 두고 브닌나의 질시와 경멸을 받는  중에서나(5-7절), 남편 엘가나가 곁에 와서 위로함으로 그녀의 아픈 마음을 다 토로하고 그 고통스런 상황을 피하거나 면할 기회를 얻었을 때에나(8절) 그 입을 열지 아니하고, 다만 홀로 슬픔을 삭이는 그녀의  모습이 그러한 고결한 면모를 엿보게  해줍니다. 실로 그녀는 그러한 면에서 다른 뭇 여인들 위에 뛰어납니다. 결혼하여 한 남편의 아내가 된 여인으로서 자식을  낳지 못한다는 것은 "그가 자식이 없음으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라고 한대로(렘 31:15)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평생에 근심과 슬픔을 지워주는 고통일 것입니다. 또 많은 여인들이 그러한 시련을 하나님 앞에서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의 그들을 위한 계획이 성취되는 것을 방해내지는 지체시키곤 했는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에게서 우리는 그 대표적인 사례를 볼 수 있습니다(창 16장). 한나는 남편의 총애를 무기삼아 브닌나의 모진 핍박에 대항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 밤이면 밤마다 라헬처럼 "나로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고 남편에게 원망을 쏟아 부으며 그 어진 가장 엘가나를 괴롭게 할 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도 않았습니다(창 30:1,2). 다만 그녀는 조용히 눈물을 흘림으로 그 여인으로서의 극한 시련의 고통스러움을 표현하는 것 외에 달리 아무런 격한 감정도 표출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기이한  침묵'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요?(마 27:12-14) 이러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은 그 원천이 어디일까요?(골 1:11) 우리는 그 답을 시편 기자의 고백에서 능히 가늠할 수 있습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저만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원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니 내가 크게 요동치 아니하리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대저 나의 소망이 저로 좇아 나는도다… 백성들아 시시로 저를 의지하고 그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 62:1,2,5,8).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고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시 37:1-9).

한나의 고결한 인품은 다름 아닌 그 영혼이 늘 하나님  앞에 있어서 그분의 아름다움과 지혜로우심과 능하심에 대해 묵상하기를 쉬지  아니한데 있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녀에게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의 뜻 안에 있다는 것(신 30:19), 그분의 뜻은 결국 우리의 최선과 행복을 위한다는 것(렘 29:11), 그분은 원하시는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행하신다는 것(엡 1:11; 단 4:35), 그분에게는 능치 못하심이 없다는 것(창 18:14; 신 32:39), 그분의 일은 다 진실하고 그분의 행하심은 의로우시다는 것(단 4:37; 시 145:17)등과 같은 복스러운 진리들을 아는 지혜로 가득했기에 그녀는 저 의인 중의 의인 욥과 같이(욥 1:1,8, 2:3; 겔 14:14), 또한 우리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주님같이(사 53:7; 히 12:2; 벧전 2:22-23) 그 입을 열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사람을 대적하는 입술의 죄를 범함이 없이(욥 1:22; 시 141:3)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며, 끝까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간증을 잃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과 인격은 인내로 입증되며, 그 인내는 '쉬지 아니하는 악'이라고 한  혀를 적절히 다스리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할 수 있는바(약 3:8), 참 믿음의 증거로서 참 행위를 강조하고 있는 야고보는 '온전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내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2).

    3.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1)

한나의 그러한 침묵은 성령 안에서 가냘프고 세미한 호소로 나아갑니다(롬 8:26-27). 이는 그녀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자세에서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자세로 이끌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한나의  기도하는 모습을 통해  성령께서 그녀의 기도 가운데 어떻게 역사하사 그녀로 하여금 생각하지도, 바라지도 못한 커다란 환상을  가지고(엡 3:20), 그 입을  크게 벌리게  하셨는지를 보게  됩니다(시 81:10, 50:15).

"그들이 실로에서 먹고 마신 후에 한나가 일어나니…"(9절) 여기에 한나가 일어났다고 한 표현은 두가지 면에서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킵니다. 우선 그것은 그녀가 개인적인 문제, 즉 자녀가  없음으로 브닌나에게 모진 괴로움을 당하던 일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기로 결심한 것을 의미합니다. 그동안 그녀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인격과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해 허락하신  고난으로 여기며 묵묵히 감수해 왔으나(시 119:71,75), 이제 그 고통이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분량을 넘어섰기에, 또는 그렇게까지 고통이 심화되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위해서 '인생 앞에서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베푸신 은혜'를 힘입기 위해서 드디어 하나님 앞에 자신의 문제를 가져간 것입니다(시 31:19, 62:8; 고전 10:13). 또한 그것은 그녀가 개인의 위치를 뛰어넘어 영적인 불임(不姙) 상태로 인해 고통 중에 있는 그녀의 민족을 대표해서 일어난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녀 자신은 의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경건한 여인이 자기에게 나아오는 것을 보시고 이제 사랑하는 그 백성이 오랜 불신앙과 패역의 늪에서 회복과 부흥의 광활한 대지로 헤어나오기 위해 기동(起動)하는 모습을 소망스럽게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4.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2)

하나님께서는 불임(不姙)의 고통 위에 같은 여인에게서 질시와 경멸을 당하는 고통을 더하사 한나를 자신에게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한나 자신의 잘못이 가져온 자업자득(自業自得)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허락된 애매한 고난이었습니다(5,6절, 벧전 2:19,20). 남편의 사랑을 갑절로 받은 일만해도 그러했습니다. 그 사랑은 한나가 브닌나의 멸시의 눈초리에 대항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끌어낸 것이 아니라, 남편 쪽에서 그녀의 인품과 처지를 생각하고 베푼 것이었습니다. 남편의 총애가 오히려 그녀의 고통을 가중시킨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나를 제발 사랑하지 마세요'라고 항변하며 그 어진 남편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 여리고 깨끗했습니다(시  34:12∼14).

아무튼, 그녀는 한계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자신의 전  존재를 하나님 앞에 쏟아붓고 있습니다(시 22:14).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10절). 그녀가 그 앞에 자신의 상한 영혼  전부를 쏟아붓고 있는 대상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셨습니다(고후 1:3,4). 그녀가 처한  고통의 심연을 능히 헤아리고 그 슬픔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이는 그녀의 영혼을 지으신 하나님 한 분뿐이셨습니다(시 139:13∼16, 33:15). 그분만이 환난  중에 있는 그녀의 영혼의 고통을 온전히 이해하실 수 있었습니다(시 31: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사 41:27∼31).

성령께서는 한나의 영혼 속에  먼저 그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새롭게 계시하시며 그 영혼의 상처를 싸매 주셨을 것입니다(욥 5:18; 시 41:3). 그 슬픔으로 퍼뜩거리던 작은 여인의 가슴이 그녀의 전후를 두루시고 안수하시는  크신 하나님의 따스한 손길로 인해 점차 안정을  찾았을 것입니다(시 139:5). 그리고 이러한 세미한 음성이 귓전에 울려 왔을 것입니다. " 그 노염은 잠간이요 그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시 30:5).

이어서 성령께서는 그녀의 영혼을 깊은 시름에서 깨어나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이루시는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들게 하셨을 것입니다(롬 16:27; 시 57:2, 138:8).

'모든 위로의 하나님'을  통해 그 온기와 생기를 회복 받은 한나의 영혼은 이러한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인자한 음성을 들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녀여, 네가 잉태치 못한 것은 네가 믿고 있는 대로 나 여호와가 뜻이 있어 허락한 시련이라. 나의 계획은 너와 네 가정과 네 민족을 위한 것이니 네가 당하는 시련은 사랑하는 나의 백성의 복을 위한 값진 것이라. 이제 네 간절함이 내 앞에 상달하여 내가 그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 너와 네 민족을 향한 뜻을 성취하기를 시작할 것이라. 이제 죽은 자 같이 부복한 너를 통해 네 민족을 소생시킬 내 뜻을 이룰 작정이니 너는 잠잠히 나를 앙망하며 나 여호와의 행사를 지켜볼 것이라."

그 상한 심령이 위로를 받고 그 흔들리는 믿음이 소생함을 얻은 한나는 다시금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소망의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었을 것입니다(롬 15:13, 5:3,4; 벧전 5:19).

그녀는 '오래 지도하는 동안에'(12절) 그녀  자신이 겪는 고통스러움 만큼이나  뼈저린 시련 중에 있는 그녀의 민족의  상태를 깊이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절망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사람의 심령과 능력을 지닌 영적인 지도자가 일어나는 것임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한 서원 속에는(11절) 그녀의 심경에 일어났을 법한 그러한 생각의 변화가 암시되어 있는 듯 보입니다. 즉, 그녀는 혹시 주께서 은혜를 베푸사 아들을  허락하신다면 그 아들을 민족의 회생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을 수 있는 위치에  내어드리겠노라고 결연히 다짐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녀 자신과 그녀의 민족을 위해서 더 없는 '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한 여인의 고통이 한 민족의 고통으로, 한 아들의 출생에 대한 기대가 한 민족적 지도자의 출현에 대한 여망으로 화했을 것이며, 그 모든 과정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성령의  역사의 결과였습니다(롬 8:26,27). 이 거룩한 영의 이끌림을 받는 동안 한나는 어떤 소중한  영적인 체험을 했을까요? 먼저 그녀는, 앞서 살펴본대로 하나님을 여러 면에서 친히 뵈옵는 축복을 경험했을 것이며, 아울러 그녀 자신을 위한 생각에서 그녀가 속한 민족의 장래를 위한 생각으로 그 마음이 한없이 넓어져서  사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기쁨이 충만했을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 안에서 위로와 지혜와 소망을 넘치도록 받았기에 한나는 더 이상 근심에 잠길 이유가 없었습니다.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 수색이  없으니라"(18절). 그녀의 기도는 그 간절함에 있어서나(렘 29:12,13; 마 7:7∼11;  눅 18:7; 약 5:17), 그 동기에 있어서나(요일 5:14), 그리고 그 경외하는 태도에  있어서나(전 5:1,2) 만세에 기억될만한 기도의 모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소중한 본을 좇아 우리의  기도의 삶에도 변화가 일어나서 우리에게 허락된 모든 시련으로  인해 기도하는 중에 우리 영혼이 소생함을 입을뿐더러 하나님의 백성의 장래를 위해서도 입을  크게 벌리고 간절히 구하게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주께서 우리의 마음 눈을 열어 우리 자신과 우리 주위의 영적인 실상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과 역사를 위해서 우리의 가장 귀한 것까지도 기쁨으로 내어드리는 온전한 헌신에 이르게 하사 한나처럼 만세에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로 기억되게 하시기를 소원합니다. "나는 여기서 나의 주 당신 곁에 서서 여호와께 기도하던 여자라"(26절).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시 65:2).

    5.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딛 2:4).

한나가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것은  우선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원만했기  때문이요, 또한 인간과의 관계도  원만했기 때문입니다. 즉, 그녀는 율법의  중심되는 주제인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일을 한시도 게을리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얻었던  것인데(잠 3;4), 그러한 본은 후에 그녀의 아들에게 그대로 반영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2:26). 그러면 누가 그녀의 이웃이었을까요? 그녀는 가장 가까이에 가장 소중한 이웃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남편과 자녀, 그들이  이웃 사랑의 가장 우선되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는 순종함으로써, 또 자녀에게는 순종케함으로써 이웃 사랑의 실천의 첫걸음을 합당히 내딛었던 것입니다. 그녀의 신앙은 '지식없는 소원'이 아니었습니다(잠 19:2). 그녀는 그저 열심만 가지고 자기 분량을 넘어서서 이리저리 불안스레 일감을 찾아다니는 '자천' 일군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와 본분과 역할 및 삶의  우선 순위를 깊이 인식하고, 적은 일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그런 일부터  충실하는 '기초가 잘 다져진' 일군이었습니다(마 25:23; 사 26:4).

그녀는 다름아닌 하나님을 위해서 가정  사역에 충실하는,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민족의 꺼져가는 신앙의 불꽃에 끊임없이 생명의 기름을 대주는 신앙의 파수꾼이자 최후 보루(堡壘)였습니다. 그녀가 남편의 사랑을 받은 것은  그녀의 외모나 자식을 낳지  못하는 처지 때문이 아니라(물론 이 점이 어느 정도 동정을  일으키게 했겠지만) 그녀의 남다른 신앙과 인품 때문이었음을 성경은 넌지시 암시해 줍니다. 브닌나의 모진 핍박을 잠잠히 감내하는 모습에 적지않은 감동을 받았을 남편 엘가나는 이제 그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여호와께 매년제를 드리러 올라가는 일을 얼마간  중단하고 싶다는 의외의 제안을 받고, 또 다른 면에서 감동을 받게 됩니다. "오직 한나는 올라가지 아니하고 그 남편에게 이르되 아이를 젖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 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1:22). 이 제안은 그 태도와 내용 면에서 엘가나와 또 우리  자신에게 잔잔한 감화를 줍니다. 한나는  남편을 주(主)라  칭하여  복종한 '열국의  어미' 사라의 본을 좇아(창 17:16; 벧전 3:6) 남편의 의사를 정중히 묻는 '순종하는 아내'의 모습을 보임과  동시에, 모세의 모친 요게벳의 본을 좇아(출 2:1∼10)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않는다'는 자녀 교육의 원리(잠 22:6)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실천에 옮긴 '순종케 하는 부모'의 본을  보였습니다(엡 6:4; 딤전 3;4). 그녀가 아들의 양육을 위해서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는 중요한 일을 잠시 중단한 것은 인간의 모정(母情)을 뛰어넘은 믿음의 결정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즉, 그녀는 그  아이를 서원대로 여호와께 바치기 전에 장차 하나님의 일군으로 자라는데 밑거름이 될만한 신체적, 정신적, 영적인 양분을 아이의 중요한 성장 시기에 집중적으로 공급해 주기를 원한 것이며, 이에 그녀의 그러한  중심을 십분 헤아린 엘가나도 기꺼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한 것입니다. "그대의 소견에 선한 대로하여 그를 젖떼기까지  기다리라 오직 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1:23). 이러한 엘가나의 대답은 평소에 한나가 그 남편에게서 얼마나 신뢰를 받고 있었는가를 엿보게 하는데, 이는 바꿔 말해서 현숙한 여인을 아내로 얻은 자가  여호와께로부터 누리는 복의 어떠함을 실감케 하는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잠 18:22).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그런 자는 살아있는  동안에 그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치 아니하느니라"(잠 31:10∼12).

한나는 이같이 하나님 앞에서 충성되이 가정을 지킴으로써 그 민족을 살리기 위해 그 자신이 할 수 있는 소임을 다했습니다. 그녀의 그러한 삶의 간증이 유지되는 동안, 그 남편은 그 땅의 장로들 중 한 사람으로 칭송을  받았을 것이며(잠 31:23),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어린 사무엘은 장차 그 민족을 위경에서 건져낼 인물로서 심령 속에 거룩한 신앙의 싹을 틔우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한나는 믿음 안에 한 '늙은 여자'로서, 한 남편의 아내된 후세의 '젊은 여자들'을 향해 무엇이 진정 가치있고 중요한 사역인지를 분명히 일깨워주고 있으니, 우리는 그녀의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는' 삶의 메시지를 경히 여기는 어리석음을 범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히 11:4).

"저들로(늙은 여자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근신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니라"(딛 2:4,5).

    6. 고통의 여정이 기대와 소망의 여정으로 - 달라진 매년제

아이 사무엘의 출생과 여호와께  바쳐짐은 한나의 삶에 드리워진  먹구름을 완전히 벗겨 주었습니다. 시련의 기간을 훌륭히 감내한 그녀에게 주어진 것은 승리의 찬가였습니다.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2:1).

실로 하나님께서 그녀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그녀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으니 이는 잠잠치 아니하고 그녀의  영광으로 하나님을 찬송케 하심이었습니다(시 30:11,12). 그동안 그녀의 삶을 채웠던 그 조바심과 마음 졸임, 그 부끄러움과 모멸감, 그 눌림과 찢김과 쓰라림, 그 끝이 없는 듯한 인내의 나날들이 변하여 기대와 환희와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에 근심과 슬픔의 제사가 찬미의 제사로 바뀌어(히 13:15) 그녀는 모든 성도들을 향해 그 벅찬 감격을 노래한 것입니다.

"내가 번제를 가지고 주의 집에 들어가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니 이는 내 입술이 발한 것이요 내 환난 때에 내 입이 말한 것이니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내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내가 내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내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시 66:13∼17). 그녀는 자신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 그 자신과 그녀의 민족에게 의미하는 바를 확실히 아는 중에 2장 전반부(1∼10절)의 찬미의 기도를 올린 것입니다. 이 기도는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 한 여인의 입에서 나온 고백으로 보기에는 너무 엄청나고 광대한 배경을 담고 있습니다. 작은 여인이 만난 크신 하나님이 그녀의 작은 가슴에 큰 우주를 담게 하셔서 그 자신과 가정과 사회와 그리고 민족까지 뛰어넘어 온 세계를 주관하는 하나님의 권세와 통치의 광대무변함을 보게 하셨습니다(2:8∼10). 이 얼마나 큰 안목의 변화인지요! 그녀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와 위엄에 온 영혼이 사로잡혀서 자기 문제와 자기 세계를 벗어나 눈을 들어 하나님의 백성과 나라의 장래를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믿음 위에 견고히 서서(히 11:38)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복인 것을 뭇 성도들에게 선포했습니다(시 73:28).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2:19) 이제 하나님의 전을 향한 그녀의 여정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전에는 조바심과 눌림과  슬픔으로 얼룩졌던 그 여정이 이제는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넘쳐나는 여정으로 화했습니다. 전에는 갈등과 고통과 참음 가운데 자신과 싸우던 시련의 현장이 이제는 감사와 찬송의 장(場)으로 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어린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한나의 삶과 또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돌아보사 대적의  핍박에서 능히 구원하시는 확실한 증표였기에 그를 볼 때마다 한나의 심령은 소망으로 더욱 새로워졌습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2:21).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2:26).

그가 여호와 앞에서 자라고 있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의 회복과 영광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의미했습니다. 한나는 그 사랑하는 아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점점 온전케 되는 것을 보면서 그녀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성취되어 가고 있음을 깊이 깨닫고 말할 수 없는 그분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올렸을 것입니다(고후 9:15). 이제 한나의 여생은 아이 사무엘이 여호와 앞에서 자라는 것을 바라보는 즐거움으로 날로 소망이 넘쳐났습니다.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2:19). 이제 하나님의 전을 향한 그녀의 여정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전에는 조바심과 눌림과  슬픔으로 얼룩졌던 그 여정이 이제는 기쁨과 평강과 소망이 넘쳐나는 여정으로 화했습니다. 전에는 갈등과 고통과 참음 가운데 자신과 싸우던 시련의 현장이 이제는 감사와 찬송의 장(場)으로 화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곳에는 어린 사무엘이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한나의 삶과 또한  이스라엘의 상태를 돌아보사 대적의 핍박에서 능히 구원하시는 확실한 증표였기에 그를 볼 때마다 한나의 심령은 소망으로 더욱 새로워졌습니다. 그가 여호와 앞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를 볼 수 있는 때인 매년제를 기다리는 동안  한나는 그 아이의 조금씩 커가는 몸을 위해 '작은 겉옷'을 정성들여 만들었습니다. 그녀의 매일의 삶의 주된  일과는 그 '작은  겉옷'을 짓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장래를 위하여 하나님의 일군을 낳아 기르고, 또 그 필요를 공급하기 위해 꾸준히 자신을 드리는 삶, 그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 한나의 삶이었습니다(벧전 3:5; 딤전 4:10, 5:5, 6:17). 한나는 그 인품과 삶을 보는 안목에  있어서 우리의 영원한 모본이 되어줍니다. 여성으로서의 그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 한 남편의 아내로서의 그 깊은 공경심과 순종심, 자녀에 대한 그 섬세하고 확신에 찬 훈육의 손길,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향한 그 깊은 경외심과 신뢰는 그녀가 이 인생길을 걷는 동안 말씀과 기도로 늘 하나님을 가까이한데서 얻은 참된 행복의 비결이었습니다. 모쪼록 우리 모두 한나가 보인 드높은 표준의 삶을 갈망하며 우리의 떨군 고개를 들고, 연약하여 구부러진 무릎을 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눈은 바로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잠 4:25,26).

그리고,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혹 참된 행복의 길을 벗어나 방황과 혼돈과 돌이킬 수 없는 후회의 길에  들어설 것을 염려하여 근신과 각성을 간곡히 호소하시는 주님의 사랑의 경고를 가슴 깊이 새기고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부종하며 또 그에게 복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오 네 장수시니…"(신 30:19,20).  <끝>

                                                                                                               글쓴이 : 정병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