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남긴 여인 - 뵈뵈

 


             
    

     우리 자매 - 뵈뵈

 

약 성경과 교회 역사를 보면 빛을 남기고 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알려진 사람들도  있고 또 그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채 알려진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기로 쓰여진 사람들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 페이지의 글로 소개된 사람들도 있고,  또 짤막하게 소개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여인들도 상당수가  있는데 그 중 한 여인의  발자취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 분의 이름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롬 16:1)입니다. 이 자매님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불과 두 구절의 짤막한  말로 로마 교회에 천거하고 있지만 이 자매님은 매우 비범한 여자요,  드러난 "일군"이었던 것을 익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사도 바울께서 이 뵈뵈 자매님을 어떻게 천거하고 있는지를 직접 본문의 말씀에서 읽어 보겠습니다.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찌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롬 16:1,2).
  
  이것은 일종의 천거서입니다. 뵈뵈 자매가 로마를 방문하게 됨에 따라 사도 바울이 그곳 로마 성도들에게 그를  소개하며 또 그를 그들의  사랑에 부탁하는 글입니다. 내용이 비교적 짧지만 매우 함축적이고 실제적이어서 뵈뵈 자매님이 어떤 분이었었는지 또 로마 성도들이 주님 안에서 어떠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돌보아 주어야 했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뵈뵈 자매님의 영적인  모습과 그 삶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의 뵈뵈 자매에 대한  소개 내용을 세 가지  면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⑴ "우리 자매 뵈뵈" ⑵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 ⑶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
  
  ⑴ "우리 자매 뵈뵈"
  사도 바울이 뵈뵈를 "자매"라고만 부르지 않고 "우리 자매"라고 부른  것을 보면 사도 바울의 뵈뵈 자매에 대한 친밀감과  존경심, 그리고 신뢰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물론 뵈뵈 자매의  주님에 대한 뛰어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 즉 교회와 그 성도들 뿐만 아니라 또한 사도 바울과 같은 주님의 사역자들까지도 물심 양면으로 돌아보는 그의 은밀하고, 헌신된 삶에 대한 감동의 표현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 자매!" 과연  나도 이렇게 성도들의 사랑이  담긴 뜻 있는 천거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⑵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
  겐그레아는 지리적으로 고린도 동부의 한 항구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겐그레아 교회가 작은 규모의 교회가 아니고 비교적 큰 교회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교회에서 뵈뵈 자매님이  한 지체가 되어 주님을 섬기고  있었으나 그 하는 일의 규모가 전 교회적이고, 교회 중심적이어서 상당한 덕과 유익을 교회에 끼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생각이 자기와  자기 가정을 넘어, 교회에까지 미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는 일이  매우 실제적이고 매우 헌신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겐그레아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교회와 사도  바울과 같은 전심 사역자들까지도 서슴없이 그를 "교회의 일군"으로 인정하며 존경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교회를 부탁할 때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 20:28)라고 하여 하나님께서 교회를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하게 여기시는지를 장로들의 마음 속에 감명깊게  심어주었습니다. 뵈뵈 자매는 겐그레아  교회에 대한 그런 소중성을 마음에 지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교회의 일이라면 모든 일을 뒤로 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했던 것 같습니다. 이로써 그의  삶 전체가 교회와 교회를 위하는  일에 결부되어 있어서  명실공히 "교회의 일군"으로 부름받기에 이른 것 같습니다.

  "교회의 일군!" 이렇게 나도 다른 성도들로부터  "교회의 일군"이라고 칭함을 받을 만큼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나의 삶을 바치고 있는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자체여서 그는 교회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괴로움이라도 기쁨으로 여기고 자기 육체에 채우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골 1"24,25).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처럼 소중히 여겨 "교회 일군"이 되었으며 고린도 교회와 같은 육적인 교회를 위해서도 자기의 재물은 물론이요 자기 자신까지 바쳤던 것입니다.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함으로 재물을 허비하고 또 내 자신까지 허비하리니..."(고후 12:15).
  
  사도 바울은 자기 개인의 당하는 고통과 괴로움을 생각하느니 보다도 주님의 몸된 교회를 더욱 더 염려할 만큼 교회를 열렬히 사랑했습니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7,28).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사랑하시기를 자기의 생명을 희생하시기까지 하셨습니다(엡 5:25). 뵈뵈 자매의 교회를 위하는 생각이 그녀로  하여금 "교회의 일군"이 되게 한  것처럼 여러분의 교회에 대한 생각도 여러분을  "교회의 일군"이 되게 할만큼 충분한 것인지요?
  
  ⑶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
  "우리 자매!"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 이것이 뵈뵈 자매의 믿음의 경력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매"라는 사도 바울의 말씀에서  뵈뵈 자매의 사랑스러움을 본다면, "겐그레아 교회의 일군"이라는 말씀에서는  뵈뵈 자매의 근실한 봉사 정신을 보게 되며,  또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라는  말씀에는 뵈뵈 자매의 영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보호자"라는 말씀은 후원자  또는 보증인 이상의 사람에게 쓰여질 수 있는 칭호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즉 "보호자"는 부모로서 자식에 대한 의무를 대신하는  사람을 가리켜 사용되는 낱말입니다.  후원자는 대체로 재정적으로 후원해 주는 사람을 가리킨다면, 보증인은 그가 보증하는 사람에 대해서 그의 신분상의 문제나 재정상의 문제에 대해서 책임을 져 주는 사람을 가리키지만, 보호자는 그가 보호하는 사람의  신분과 재정뿐만 아니라 그의  일신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서까지 부모처럼 돌보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이는 낱말입니다. 뵈뵈 자매가 여러 사람과 사도 바울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즉  뵈뵈 자매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성도들을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모처럼 돌보아 주었다는 말씀입니다. 뵈뵈 자매는 그 마음이 낮은 데 있지 아니하고 높은데  있었으며, 그 마음이 자기 자신에  집착되어 있지 아니하고 주님과 주님의 사역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뵈뵈  자매를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주라"고 천거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여러분과 저를 천거한다면 우리에 대해서도 이런 천거서를 써 주실만큼 우리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지를 반성하게 됩니다.

                                                                                                            글쓴이 : 박 준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