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bullet_pieces.gif 빛을 남긴 여인 - 내 주의 모친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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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bullet03_blue.gif 내주의 모친 마리아(1)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왕상 8:27).

이것이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 성전의 낙성식에서 한 기도입니다.  그 위엄과 존엄성에 있어서나 그 거룩과 영원하심에 있어서나 상천하지(上天下地)의 그 누구, 그 무엇과도 가히 비교할 수 없는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그 앞에 미물에도 미치지  못하는 유한한 인간이 지은 집에 거하시겠다는 엄청난 사실을 생각할 때 솔로몬은 얼마나 경탄했는지요!
그러나 이 보다 더 무한히 경탄스러운 일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피조물의 몸에 잉태되어 탄생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광활한 우주를 모래 한 알 속에 축소시켜 집어 넣는 일과 같은 기적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 주님의 동정녀 탄생의 제일 큰  기적은, 동정녀에게서 아기가 잉태되었다는 사실보다는 무한히 크시고 무한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심히도 자고 심히 부정한 인간의 몸 속에 잉태, 탄생되었다는 데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여인을 얻기 위해 온 지구를 두루 살피시던 하나님의 시선이 갈릴리 나사렛에 사는 한 무명한 시골 처녀에게 머물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렇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입은 처녀가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지, 또 그 처녀에게서 배운 교훈이 무엇인지 살펴 보기를 원하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 마리아"입니다(눅 1:27).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가리켜 "은혜를 받은  자"(눅 1:28)라고 했고,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으로 말하기를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라고  했으며, 마리아 자신에 대해서 말하기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8)하고  극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역대교회의 마리아에 대한 관심을 살펴보면  그 관심이 크게 양극화되어 있는 사실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 쪽에서는 마리아를 신격화시켜 그를 우상으로 만들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쪽에서는 마리아에 대해서 거의 무관심하다시피 하고 있음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차제에 마리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세가지 면으로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Ⅰ. 성경의 마리아
Ⅱ. 교회사의 마리아
Ⅲ. 이에 따른 교훈

Ⅰ. 성경의 마리아
우리는 성경에서 마리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의 공부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마리아에 관한 이해의 기초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마리아를 잘 알지 못하면 우리는 마리아를 신격화하여 그녀를 숭배하거나 그녀에게 기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먼저 구약의 예언에 나타나 있는 마리아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창세기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물론 여기에 언급한 "여자"는 직접적으로는  하와를 가리켜 말씀한 것이지만  예언상으로는 우리 주님을 낳을 여자를 가리켜 말씀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왜냐하면 갈라디아서 4:4에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하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주님을 낳은 그 여자가 마리아이기 때문에 창세기 3:15에서 말하는 "여자의 후손"의 '그 여자'는 바로 마리아를 가리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7:14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우리는 마태복음 1:18-23의 말씀을 통해 여기에 언급된  "처녀"가 마리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상에 인용한 구약의 두 말씀은  다같이 우리 주님께서 처녀에게서 태어나  "여자의 후손"(남자의 후손이 아님)이 될 것을 말씀한 것이므로 우리 주님의  처녀 탄생은 구약의 예언을 따라 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신약을 통해 마리아에 관한 것을 비교적 열 한 부분으로 나누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처녀 마리아(눅 1:26-38)
마리아는 이 때의 나이가 이십세 전후였을 것입니다(이 때는 조혼을  하던 때이므로 마리아를 십대의 소녀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만). 그리고 그녀의 가정 형편은 물질적으로도 유복한 편이 못되었던 것 같이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찬송시에 보면  "비천한 자(눅 1:52) 또는 "주리는 자"(눅 1:53)에 관해서 언급했을 뿐만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따라 결례를 행할 때에도 주님께 어린양을 드리지 못하고 가난한 사람들이 드리는 비둘기로 제사드리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사는 고장도 예루살렘이나 베들레헴 같은  성도(聖都)가 아니고 갈릴리 나사렛과 같이 불법과 부도덕이 성행하는 곳이었고, 시대적으로도 그 때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분위기가 너무나 혼탁하고 너무나 어두워서 하나님을 마귀로, 마귀를 하나님으로, 성전을 장사하는 집과 강도의 굴혈로 착각할 정도까지 되었습니다. 즉 외식과  불법과 횡포가 난무하는 시대였습니다(마 23장). 그런 시대적 어두운 배경과 불경건한 고장,  또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나쁜 영향을 받지 않고 어떻게 어린 소녀 마리아가 하늘의 하나님의 마음에 들만큼 그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을 순종하는 믿음의 용기를 소유하게 되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누가복음 1장을 열어 하나님의 특사인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 인사 및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을 수태하게 될 것에 대한 발표 또 이에 따른 마리아의 반응 등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섯째 달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들어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다윗의 자손 요셉이라 하는 사람과 정혼한 처녀에게 이르니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라 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  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눅 1:26-28). 천사 가브리엘이 성전에 임해서 제사장 사가랴에게  말할 때는 아무런 인사말도 없이  그저 사가랴의 이름을 불러 이야기 했지만 나사렛 촌의 처녀를 대할 때는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하고 깍듯이 정중한 인사를 하고 있음을 주목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마도 가브리엘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전에 벌써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우리 주님을 낳을 어머니로  선택, 임명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이로 볼 때 하나님께서는 비천한 마리아를 천사 가브리엘이나 제사장 사가랴보다도 더 존귀케 하시고 더 높이신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신 것입니다(눅  1:52). 이것은 상대적으로 마리아가  얼마나 자기를 낮추며 살았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비록 어린  소녀로서 가난한 환경과 불경건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 살아야만 했지만 그것을 탓하지 아니했습니다. 마치 그는 짠 바다물 속에 살지만 그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고 유유히 살아가는 신선하고도 생명력 넘치게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처럼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아름답게 지켰던 것입니다. 이 얼마나 청순한 모습입니까.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과 인사를 받은 마리아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처녀가 그 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하매"(눅 1:29).
여기서 우리는 다시 마리아의 아름다운 두가지 덕성을 보게 되는데 그 하나는 마리아의 때묻지 않은 마음의 순박성이고, 다른 하나는 마리아의 여성다운 섬세성입니다.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의 인사말을 듣고 놀랬다는 것은, 마리아가 주님을 섬기고  말씀을 따라 흠이 없이 살되 그에 대한 무슨 보상이나 축복을 바라고 한 것이 아니고 순전한 마음으로 했다고 하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천사의 인사가 마리아에게 거북하게 느껴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또 마리아가 천사의 인사말을 듣고 놀라 이런 인사가 어찌함인고 생각했다는 것은 마리아가 섬세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그 과분한 인사에 대해 놀라기만 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리아가 그 과분한 인사에 대해 속된 표현으로 우쭐댈 수도, 또 그것을 부정적으로만 받아드릴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기에 가브리엘 천사가 그의 말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위를 저에게 주시리니 영원히 야곱의 집에 왕노릇 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무궁하리라"(눅 1:30-33). 그리고 마리아는 자기에게 임할 이 엄청난 일에 대한 말씀을 듣고도 조금도 놀라는 빛이 없이 그저 단순한 믿음으로 묻기를 "…나는 사내를 알지 못하니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눅 1:34)하고 그 수태의 방법에 대해서만 의문을 나타냈지 사가랴처럼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눅 1:18)하고 불신을 나타내지 아니했습니다. 그러기에  사가랴는 그 불신의 보응으로 벙어리가 되어(눅 1:20) 천사와의  대화가 더 이상 진전이  되지 못하고 거기에서 끝나야만 했지만 마리아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의 질문에 진지하게 답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보라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5-37)고 함과 같습니다. 이렇게 마리아는 하나님의 과분한 은혜에 대해 놀라는 그런 믿음의 순박성과 함께 그 과분한 은혜에 대해 마음에 새기는 믿음의 섬세한 면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마리아는 그가 처녀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수태하게 될 것이라는 천사  가브리엘의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하고 반응한데서 우리는 마리아의 결연한 믿음의 절정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기를 갖게 된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미혼녀들이 임신하게 될 때 당하게 되는 그런 수치와 수모의 정도가 아닌, 백성들에게 돌에  맞아 죽음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런 죽음에 대한 각오를 요구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아브라함이  그의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을 때 아브라함이 그 명령에 결연히 순복한 것에 버금가는 것이며, 또한 우리 주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침례받기 위해 요단강에 오셔서 그 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실 때에 주님의 마음 속에 있었던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충성심에 버금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핏방울 같은 땀방울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하고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온전히 바치신 주님의  희생정신에 버금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하고 아버지의 뜻에 자기를 온전히 바치신 주님의 희생정신에 버금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것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5:24)고 하신 주님의 제자 정신에 합한 결연한 믿음의 역사에 버금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이것이 이천여년 전 나사렛에 살던 한 시골 처녀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마리아는 후에 사람들에게 권고하기를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요 2:5)고  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이 자기에게 말한 바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7)고 한 그 말씀이  추호의 착오도 없이 그대로 자기에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권고가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이에 대해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하고 순복했는데 이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무엇인지요?  이에 순복한 마리아는 후에 사람들에게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고"라고 권고할 수 있었는데 우리는 어떤 경우인지요? 우리도 마리아처럼 남에게 그런 권고를 할 수 있으려면 주님의 말씀에 조건없이 순복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빛을 남긴 여인들: "내 주의 모친 마리아⑵"


우리는 지난 호에서 「성경의 마리아」 즉 성경에 나타난 마리아를 상고하는 중에 특히 마리아의 처녀시절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그가 천사 가브리엘의 방문과  문안 및 그의 전해준 엄청난 소식을 듣고 나타낸 반응을 통해 마리아가 얼마나 순박하고 섬세하며 또 그 믿음이 얼마나 결연했는지 등을 살펴보며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리아는, 시골출신의 처녀로서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아서는 하류계급에 속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경제적으로 가난하고, 지리적으로 멸시받는 동네  나사렛에 살며, 또 교육적으로도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리아의 과거의 가문은 어떠했을지 몰라도 그녀가 시골의 한 목수에게 약혼된 것을 볼 때, 사회적으로 뚜렷하게 인정받는 가문의 처녀는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처녀 마리아를 택하여 여자 중에서 존귀를 얻게 하시고 만세에 복이  있는 여자가 되게 하셨으니 우리는 여기서 한 사람(처녀)의 가치가 그의 사회적, 경제적, 교육적, 또는 신체적인 조건 등과 같이 보이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사람의 하나님 앞에서의 삶(믿음)과 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처녀 시절을 지나고 있는 우리 처녀 자매님들과 모든 주님을 경외하는 성도들께서는 이 마리아의 하나님 앞에서의 순박하고, 섬세하며, 범사에 믿음적인 이러한 면을 본받음이 축복이 될 줄을 믿습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도 이에 합합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절 순종함으로 종용히 배우라 여자의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노니 오직 종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이와가 그 후며 아담이 꾀임을 보지 아니하고 여자가 꾀임을 보아 죄에 빠졌음이니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서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딤전 2:9-15).

"또한 네가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으라"(딤후 2:22).

그러면 이제 마리아의 다음 모습인 「임산부 마리아」 즉 마리아가 아기를 잉태하고 출산할 때까지의 모습을 살펴보며 교훈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2. 임산부 마리아(눅 1:39-56)
마리아의 처녀 잉태는 엘리사벳이나, 구약의 사라가 노년에 잉태한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기적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믿음이 감화를 받습니다. 엘리사벳과 사라가 노년에 아기를 잉태케 된 것은 딱딱해진 묵은 가지를 연하고 새로운 가지로 만드셔서 과실을 맺게 한 기적이라면, 마리아가 처녀로서 아기를 잉태한 기적은 신체적으로 늙은 것을 젊게 하는 그런 기적이 아니고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창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1) 마리아는 그의 임신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했습니다(눅 1:46-55)
마리아가 하나님께 그러한 은총을 입은 임산부이었기에 그녀는 모든 다른 임산부들과  다른 점이 없지   않았지만 그러나  여자가  아기를 잉태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기에(시 127:3-4, 128:1-4) 모든 임산부 자매님들은 마리아처럼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함이 옳은 줄로 여겨집니다.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배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 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5-37)는 말을 들었을 때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 1:38)하고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순복시키기로 마음을 결정하는데, 이 때에 마리아의 마음이 얼마나 설레이며 기뻐했을까 하는 것과, 동시에 그로 인해 그가 자기 약혼자와  양가 가족들과 친구들과 동네 사람들, 그리고 유대교의 장로들로부터 오해와 수모와 핍박, 잘못하면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나 두려워했을까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뒤에 나오는 마리아의 송가를 읽어보면 전자의 경우가 더 지배적이었던 것을 깨닫게 됩니다. 즉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6-48)고 함과 같습니다. 즉 마리아가 주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축복(주님의 잉태)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하고 기뻐한 것처럼, 주님 안에 있는  모든 임산부 자매님들께서도 주님께서 그들을 돌아보사 아기를 잉태케 하신 축복에  대해 얼마나 주님을 찬양하며 기뻐해야  하는 지를 깨닫게 됩니다.

만약 그대가 아기를 수태할 수 없는 여자였을 경우를 생각한다면 지금 자신에게 아기를 잉태하게 해 주신 일이  얼마나 감사하고 기쁜  것인지요! 구약의 한나가  그러하지 않았습니까!(삼상 1장과 2장). 그러므로 모든  임산부 자매님들께서 임신 기간동안  자신들에게 주신 아기를 인해 하나님께 경배하며 찬송하고 감사하며 기뻐하는 등 하나님과 뜻깊은 교제를 하며 그 기간을 보냄이 옳은 줄로 생각합니다.

(2) 마리아는 자신이 임신된 것을 발견했을 때 같은 처지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가 성도의 교제를 나누었습니다.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에 가서 유대 한 동네에 이르러 사가랴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눅 1:39-40).

"이 때에", "빨리"라는 말씀은 이 때의 마리아의 심상을 잘 말해줍니다. 즉 마리아가 천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실 일을 듣고 얼마나 흥분했었는가를 보여줄뿐더러 또한  그에게 내리실 그 비밀한 축복을 누군가와 빨리 나누지 않으면  안되었던 심상도 보여줍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그 목적을 위해 엘리사벳을 선택한 것은 천사가 이미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엘리사벳을 일러 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보라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이를 베었느니라 본래 수태하지 못한다 하던 이가 이미 여섯달이 되었나니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눅 1:36)고 함과 같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도의 교제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흥분된 마음에서 시작되며 또한 그 마음을 화답할 수 있는 사람  또는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즉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고  함과 같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의 권면도 이와 같습니다.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8-21).
"이 때에 마리아가 일어나 빨리 산중으로 가서… 엘리사벳에게 문안하니", 즉 이 성도의 교제 속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겠습니까?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 소리로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내 주의 모친이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눅 1:41-45).

여기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께서 친히 개입하셔서  축복하시되, 여기 이 경우에 있어서는 임산모 엘리사벳 자신뿐만 아니라 그 태중의 아이에게도 감동을 끼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한 교제하러 찾아온 마리아에게도 얼마나 큰 축복이 되었습니까! 즉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큰 소리로 마리아에게  놀라운 계시의 찬가를 불렀고, 또 그 태중의 아이는 마리아의 문안하는 소리를 듣고 기뻐했으며, 또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찬가를 통해 그가 천사 가브리엘로부터 들은 말씀을 재확인하게 되었으니  마리아가 성도의 교제를 구한 것이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까지도 얼마나 큰 축복을 끼쳤습니까?
앞에서 말씀한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성도의 교제는 두가지를 내포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때"이고, 둘째는 "대상"입니다. 즉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때에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성도 또는 성도들과 교제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마리아의  경우를 들어 말씀드리면 마리아는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심령이 크게 감동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엘리사벳을 찾아갔습니다(눅 1:39-40). 그러므로 덕이 되는 성도의 교제는 합당한 시간과 합당한 성도 또는 성도들을 필요로 하는 것임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그런즉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의 교제가 아기를 태중에 가지고 있는 임산부 자매님들에게 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에게도 허락되기를 기원합니다. 여기서 간단히 엘리사벳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입고 마리아에게 큰 소리로 말한 찬가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이것은 마리아가 하나님께 은혜 입은 것을 단순히 가리킨  말씀으로 여겨집니다. 천사의 말도 이와 같습니다. 즉 "은혜를 받은 자여"(눅  1:28),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눅 1:30)고 함과 같고, 또 마리아 자신도  자기에 대해서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라"(눅 1:48)고 함과 같습니다. 즉 마리아가 우리 주님의 모친이 된 것은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특별한 은혜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마리아에 대해 하신 말씀이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신 점입니다. 즉 마리아가 여자들 중에서 복을 얻은 것이지 여자들 위에 복을 입은 것은 아니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바꾸어 말씀드리면 마리아는 다른 여자들과 동등한 여자이지  그 지위가 천사나 여신 또는 천황으로 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마리아는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일에도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누가복음 2장 41-51절에 있는 말씀을 읽어보면 마리아가 몇 가지 실수를 범한 것을 보게 됩니다.
①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눅 2:43-44). 즉 마리아는 하룻 동안이나 자기 자녀를 돌아보지 않을 정도로 보통 부모에게도 맞지 않은 부주의를 나타냈습니다.
②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눅 2:48). 즉  그 부모가 보고 놀랬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주님과 주님의 사명에 대해 무지해 있었는가를 보여줄뿐더러 또한 "그 모친이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라고 한 것은 마리아의  자제력의 부족을 보여 주는 것이며, 또한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한 말 중에서 "보라 네 아버지"라고 한 것과  또 "근심하여 찾았노라"고 한 것은  마리아의 또 한 번의 무지와 그의 지극한  평범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에 주님께서  오히려 놀라셔서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하고 반문하지 않으시면 안되셨던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 남편 요셉을 가리켜 "보라 네 아버지"라고 한데 대해  주님께서는 그것을 넌지시 부정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눅 2:50)고 하여 마리아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얼마나 무지해 있었는가를 다시 보게 됩니다.
③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시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하니"(요 2:3). 즉 마리아는 예수께서 그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망각하고 자기가 마음대로 명령할 수 있는 자기의 인간 아들로 착각하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시정하여 이르시기를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라고 하시어 주님은 마리아로 하여금 그가 주님의 지으신 단순한 "여자"에 불과함을 알기를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마리아가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부르니  "무리가 예수님을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모친과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막 3:31-32)라고 했을 때 대답하시기를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막 3:33-35)고 하시어 주님은 주님의 육신의 혈연 관계가 실제로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증거하신데서도 그 사실을 나타내셨습니다(요 19:25 참조).

2)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눅 1:42)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무슨 이야기를 하기도 전에 그 태중의 아기가 누구임을 알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엘리사벳은 그 "태중의 아이"가 바로 자기의 주님이심을 알고 감탄하여 이르기를 "내 주의 모친이 내게 나아오니 이 어찌된  일인고"(눅 1:43)하였습니다. 이 말에 마리아가 얼마나 놀라고 그것을 마음에 두고 생각했겠습니까!

3)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종에서  기쁨으로 뛰놀았도다"(눅 1:44)
이 말씀은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태중의 아이가 그 소리에 기뻐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태중 교육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뒷받침하는 산 증거입니다.  이로 볼 때 임산부의 영적 상태와 그 주위의 영적 분위기가 그 태중의 아이의 영혼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태중에  아기를 가지고 있는 모든 임산부 자매님들과 또한 그들 주위에 있는  가족들과 성도들이 태중의 아이를 위해서  얼마나 자신들의 영혼 관리를 잘 해야 되며 또  영적 분위기를 잘 조성해야 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4)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눅 1:45)대제사장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듣고 믿지  아니하므로 벙어리가 되었으나(눅 1:20)처녀 마리아는 천사가 사가랴에게 한 말씀보다도 더 엄청난 말씀을 듣고도 믿어 복받은 여자가 되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믿음이 신앙 경력이나 지위와 반드시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고 도리어 믿는 자의 영적 상태와 관계가 있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믿음은 반드시 보상을 받게  되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2)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나이다"(시 84:12)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렘 17:7)는 말씀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눅 1:45)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눅 1:45)고 말씀하신대로 마리아는 마침내 세상의 구주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되신 그리스도를 그의 품에 안는 존귀를 얻게 되었습니다. 임산부 마리아가 주님께서 지시하신 엘리사벳을 찾아가 성도의 교제를 나눈 결과로 그 영혼이 주님의 은혜와 주님을 아는 지식으로 더욱  충만해져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하나님의 깊으신 도를 드러내고 있으매 우리는  또 놀라게 됩니다(눅 1:46-56). 즉  마리아가 가로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내게 큰 일을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라고 함과 같습니다.
"마리아가 석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눅  1:56). 이 석달이란 기간이 마리아에게 준 영적인 축복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그 충만한  축복을 심령에 지니고 집으로 돌아가 그 앞에 닥쳐 올 모든 오해와 수모와 핍박에도 불구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하나님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진실로  엘리사벳이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마리아에게 증거한 이 말씀은 주님의 말씀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진리입니다.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주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리라"(눅 1:45).

임산부 자매님들이시여, 그대들은 그대들의  임신을 어떻게 생각하며 또  이 기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요 주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심령에 있기를 빕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