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bullet_pieces.gif 자매들과 함께 - 시기와 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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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age/bullet03_blue.gif 시기와 자랑




린 손녀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천진난만한 마음속에도 대단히 시기심이 있어 울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그 속담의 "사촌"이 "형제"로 바뀌었다 합니다. 그만큼 시기심은 세상이 악해질수록 그 강도가 더 높아졌다고나 할까요? "시기"란 말은 사전에는 "셈하여 미워하다" 그리고  "질투"는 "우월한 사람을 시기하고 증오하는 감정"으로 천주교에서는 질투는 칠죄종(七罪宗)의 하나라 합니다.

성경에서도 "시기"에 대해서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잠 4:30)고 말씀하셨습니다. 뼈가 썩는 아픔이 곧  시기란 말씀입니다. 시기로 말미암아 형제들이 그 아우 요셉을 애굽에 팔았고(창 3:11; 행 7:9), 시기로 인하여  바리새인들이 우리 주님을 죽이는데 넘겨주었고(마 27:18) 시기로 인하여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였으니 과연 이 시기야말로 살인하는 무서운 죄악인 것입니다. 우리의 대인관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분쟁, 증오, 마찰의 원인이 종종 우리 마음 속 깊숙이 있는 시기심으로부터 야기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표면적인 문제만 보게 될 때가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한 마음으로 자신을 살피면 그 원인이 시기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은 이 시기심을 "육체의 일"이라 말씀하셨고 음란과 호색과 같은 악한  죄악과 함께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란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고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0∼21).
"그러나 너희 마음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약 3:14∼15).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또 다툼과 시기와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가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고후 12: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분노가 미련한 자를 죽이고 시기가 어리석은 자를 멸한다"(욥 5:2)는 말씀처럼 시기는 사람을 파멸로 이끄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이 시기심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고통과 실패를 당하고 있는지요! 우리의 육신은 어떤 사람이 나보다 더 우월하여 존귀를 얻을 때, 어떤 사람이 나보다 더 은사가 뛰어나 칭찬과 쓰임을 받을 때, 또  어떤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것들을  소유하여 즐길 때에 그 사람과 나를 비교해 보면서 그 사람을 시기하게 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이런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지 모릅니다. 저는 우리가 이 시기심에서 자유한 생활을 할 수는 없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죄가 마찬가지이겠지만 이 시기심도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고 있을 때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사랑에 충만해 있다면 다른 사람이 나보다 높아지고 존귀와 칭찬을 받을 때 이를 기뻐하게 됩니다. 사랑은 투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고전 13:4).

또한 우리는 자족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6∼11).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만으로 참으로 만족할 때에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것들을 부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부(富)이건 재능이건, 능력이건, 어떠한 것이든 남들이 가진  것을 탐하거나 시기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이 땅에서의 모든 영화는 잠시 동안이고 우리에게는  영원한 축복을 하늘에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묵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벧전 1:2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주시되"(엡 1:3).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려하셨으니"(벧후 1:4).

우리가 이러한 복스러운 말씀을 묵상할 때에 세상의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처럼 세상에서의 모든 영화를 "배설물"처럼 여길 수 있게도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는  말씀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는 끊임없이 시험을 받지만 그 시험에 들지 않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실 때만 그렇게 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속에 시기심이 일어날 때에 즉시 하나님 앞에서 이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속에 시작된 이 죄악을 묵인하고 보호하며 또 자백하지 않을 때에  이 죄는 점점 더 커져서 자신을 시험에 빠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 1:8∼9).

새가 우리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새가 우리 머리 위에 둥지를  트는 것은 막을 수 있다고 누가 말했듯이 우리가 시기의 죄를 용납하여 우리 안에서 둥지를 틀고 거하게 하는 것은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우리 자신이 다른 사람의 시기심을 시험하는 도구가 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쉽게 말하는 자랑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 마음에 시기심을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화 중에 무심코 하는 자랑의 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시험하는지 잘 모르고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자랑하는 것이 악하고 허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1:16). "저희가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여"(벧후 2:18).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롬 1:30∼31).

자랑은 다른 사람을 넘어뜨리게 할 뿐 아니라 교만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주님께서는 자랑의 죄를 능욕하고 악을 도모하는 죄와 같은 대열에 열거하신 것 같습니다.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는뇨"(고전 4:7).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 1:29,31).

또한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고전 13:4). 그러므로 우리도 다음과 같은 고백을 매일 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복된 삶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글쓴이: 최 복 숙